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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읽기] 대한민국의 블랙홀 된 최순실 게이트

JTBC가 최순실 씨가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PC에 담겨 있는 최 씨의 사진을 지난 10월 26일 공개했다. 한편 최 씨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태블릿PC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최순실이 우리나라를 흔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 25일 최순실 씨 관련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최근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제 입장을 진솔하게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알다시피 선거 때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순실 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홍보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보좌 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밝혔다.

이런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본 많은 국민은 망연자실했다. 최순실이란 인물은 어떤 직책도, 그렇다고 어떤 공식적 역할도 맡지 않은 그야말로 일반 국민의 한 사람인데 이런 사람한테 연설문과 홍보를 ‘자문’받았다는 것을 대통령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대통령에 대한 탈당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최순실 사태는 대통령의 사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 시작되는 것”이라며 “여야가 특검 도입을 합의하면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위해 대통령이 당적 정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용태 의원 입장은 단순히 비박들 의견만은 아닌 것 같다. 친박 중에서도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최순실 의혹은, 과거 정권에서 불거졌던 친인척 혹은 측근 비리와 비교할 때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최고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그 영향력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런 일은 김영삼 정권 때도, 김대중 정권 때도 있었다. 그 이후 노무현, 이명박 정권 때도 익히 봐왔다.

그다음이 문제다. 과거 정권에서의 친인척 측근 비리는 최고 권력이 그 문제의 핵심에 서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여지는 적었다. 그런데 이번 최순실 의혹은 대통령이 직접 최순실과 접촉하며 의견을 들었고, 그래서 대통령이 논란의 핵심에 있다는 사실이 과거 사례와는 다르다. 이는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최순실의 과거 역할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대통령은 왜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을까. 일부 언론에서는 최순실을 둘러싼 의혹이 점점 더 커지면서 국민 여론이 안 좋아지고 레임덕이 빨리 올 가능성이 높아지니 빨리 봉합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수습이 더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이 밝힌 최순실 씨의 역할은 대선 전부터 대충 2014년 상반기 정도까지다. 그런데 이런 시기적 규정은 박 대통령의 발목을 또다시 잡을지 모른다. 혹시라도 최순실 씨가 그 이후에도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나오면 그때는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해질 수 있다. 그뿐 아니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에서 최순실 씨의 역할을 연설, 홍보 분야에 국한시켰는데 만일 이 분야 이외까지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흔적이라도 나오는 날엔 문제가 더욱 커질 수 있다.

벌써부터 최순실 씨가 외교와 남북관계 문제까지 개입한 흔적이 있다는 의혹들이 나온다.

박 대통령의 이런 사과는 법적 논쟁으로도 비화될 수 있다. 대통령 연설문 초안이 과연 대통령 기록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부분부터, 이런 종류의 문건 유출을 기밀 유출로 봐야 하는가 하는 부분 등 법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야당의 공세는 달라질 수 있고,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격랑에 빠질 것이다.

일각에서는 탄핵 혹은 하야에 대한 얘기도 나오지만, 야당은 거기까지는 안 갈 것으로 생각한다. 본인들이 과거 탄핵 역풍을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자칫 너무나 세게 나갔다가는 오히려 자신들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계산을 할 터다. 야당은 최대한 최순실 문제를 양파 껍질 벗기듯이 하나씩 제기하면서 이 문제를 최대한 오래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10월 24일 발표한 개헌의 운명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에 대해 야권 반응은 조금씩 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개헌 공약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그리고 최순실 씨를 둘러싼 의혹을 덮기 위한 방책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최순실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를 덮거나 지지율 추락에 대한 위기 탈피용 개헌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이 우병우, 최순실 등 이슈에 대해 ‘블랙홀’을 만들려는 정략적인 부분도 숨어 있지 않나 싶다”면서도 “만시지탄이지만 우리 당으로서는 평가를 한다. 특위 구성 등 논의에 참가하겠다”고 밝혔다. 이렇듯 더불어민주당 측은 부정적 일색인 평가를 했지만, 국민의당은 내심 환영하는 분위기다.

물론 정당들 입장들이 반드시 대선 후보 입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기억이 생생하다.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대통령 4년 중임제 얘기를 꺼냈을 때 그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씀한 적이 있다. 지금 임기 마지막 해에 개헌을 하시겠다는데 최순실, 우병우 이런 일들을 덮으려는 의도는 아닌지 우려가 듭니다”라고 했다. 박지원 위원장의 발언과는 분명 온도 차이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우선 박 대통령께서 그동안 ‘개헌은 블랙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임기 말에, 또 경제 살리기에 집중해야 될 시기에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말씀해왔다”며 “갑자기 지금 개헌을 말씀하시니까, 이제는 거꾸로 무슨 ‘블랙홀’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인가 의아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SNS에 “대통령 눈에는 최순실과 정유라밖에 안 보이는지? 재집권 생각밖에 없는지?”라고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야당 주장은 맞는 셈이 됐다.

역설적으로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는 이번 최순실 사태가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앞에 언급했듯 이런 권력 유착 비리 의혹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으려 하는 것이 맞다. 그 근본적인 해법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해체에 있어야 한다. 대통령 측근, 친인척 비리 의혹은 매 정권마다 등장했고 이런 의혹의 중심에는 늘 제왕적 대통령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명분도 있다. 지난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을 만들 때, 가장 주안점을 뒀던 부분은 바로 독재의 재발 방지와 민주화였다. 그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 세월 동안 우리 사회는 많이 다원화됐고 또 정보도 거침없이 유통될 수 있는 사회가 됐다.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처럼 뉴스위크와 타임지의 특정 페이지가 찢겨진 상태로 판매되거나 먹으로 지운 페이지를 들여다봐야 하는 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은 독재의 등장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제 민주화를 추구하기 위해, 독재의 재탄생을 막기 위해 만들었던 옷을 바꿔 입을 때가 됐다. 그래서 지금 만들어질 헌법은 민주화를 위한 헌법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헌법이어야 한다.

만일 지금 시기를 놓친다면 언제 이런 시기가 올지 모른다. 바로 이런 점은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명분이다. 하지만 이런 명분에도 불구하고 과연 야당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부분이 국회 차원에서의 개헌 논의의 핵심이 될 것이다. 정국의 주도권은 이제 야당으로 넘어간 듯 보인다.

그런데 야당은 이런 정국을 최대한 이용해 정권을 잡으려 할 확률이 높지, 개헌에 동의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개헌이라는 블랙홀은 더 커다란 블랙홀 앞에서 맥도 못 추고 하루 만에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에 처해졌다.

어쨌든 지금 정국은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다. 분명한 점은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청와대가 안다면 최순실을 빨리 데려와야 한다. 최순실 역시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놔야 한다. 그것만이 이번 사태를 그나마 수습하는 유일한 길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81호 (2016.11.02~11.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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