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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영칼럼]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국민은 분노한다. 부끄럽고 충격적인 일에 온 나라가 들썩인다. 비선(秘線) 실세의 ‘국정 농단’ 사건이 정권의 블랙홀로 등장했다. 최순실은 ‘어둠의 실력자’였다.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문서를 미리 받아본 그는 인사·외교·안보·행사 곳곳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잘못을 시인했다.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펄쩍 뛰었던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무능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비선 실세의 국기문란 행위는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다. 통치자의 눈과 귀를 가려 권력의 존립을 뒤흔든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최순실 스캔들을 두고 “고려를 멸망하게 한 신돈(辛旽)과 같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고려 왕실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괴승 신돈이 전권을 장악했다. 노국공주 사망 이후 공민왕은 정사에서 멀어졌다. 신돈은 역술과 미신으로 온 나라를 혼탁하게 했다. 신돈 주변의 간신들은 온갖 비행을 저질렀다. 측근 세력의 발호에 문신 집단의 개혁은 수포로 돌아갔다.

국가 권력의 사유화는 통치 시스템의 몰락으로 연결된다. LA타임즈는 최순실이 제정 러시아 시대 요승 ‘라스푸틴(Rasputin)’과 같은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던 라스푸틴은 황태자의 혈우병을 낫게 한 공으로 알렉산드라 황후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황제인 니콜라이 2세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온갖 전횡을 일삼았다. 로마노프 왕조는 결국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 붕괴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집권 4년 차 ‘레임덕 증후군’은 어김없이 반복된다. 역대 정권에서 기세등등했던 ‘비선 실세’는 하나같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 전두환정부 때는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이 비리의 핵심 인물이었다. ‘리틀 전두환’이라 불린 그는 새마을 왕국을 세웠다고 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노태우정부 시절엔 영부인의 사촌동생, 박철언이 ‘6공의 황태자’로 군림했다. 김영삼정부 때는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이 ‘소통령’으로 행세하며 국정과 각종 인사에 개입했다. 김대중정부에서는 김홍일·홍업·홍걸 ‘홍삼트리오’가 이권 청탁에 앞장섰다. 노무현정부 시절엔 대통령의 형, 노건평이 ‘봉하대군’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세했다. 이명박정부 때는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이 ‘만사형통’이라는 얘기를 들어가며 각종 비리에 개입했다.

최순실 스캔들은 대통령 40년 지기, 측근에 의해 벌어진 ‘현대판 수렴청정’ 사건이다. 박 대통령은 지혜와 명민함과 예지 능력까지 갖춘 신라시대 선덕여왕과 대비된다. 선덕여왕은 탁월한 인재등용책을 통해 삼국통일의 기틀을 닦았다. 그가 뽑은 최고 인재는 김유신과 김춘추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측근 관리에 실패했다. 친인척 단속에는 엄격했다지만 비선 실세에 의존하고 그들의 준동을 방치했다. 소통하라는 권고와 수많은 경고음을 외면했다. 그 결과 리더십은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자격 논란에도 휘말린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처음 10%대로 떨어졌다. 대학가·종교계에서 시국선언이 잇따른다. 외국인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인식하고 주식을 내다 팔았다. 박 대통령이 깜짝 제시한 개헌 카드도 최순실 쓰나미에 묻혀버렸다.

원칙을 깨고 반칙을 일삼는 비선 정치에 법치주의가 훼손됐다. 국무총리와 내각, 청와대 참모진은 허수아비 신세가 되고 말았다. 국정은 마비되고 증권가 지라시에 온갖 억측과 루머가 난무한다. 최순실 소환과 수사는 빠를수록 좋다. 특검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운영 비리, 공무상 비밀누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모든 혐의를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한다. 아울러 최순실 모녀의 자금 세탁·탈세 의혹에 대해서도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인적 쇄신을 통한 국가 운영 시스템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email protected]]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81호 (2016.11.02~11.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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